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슈 번 (문단 편집) === [[보신전쟁]]과 [[메이지 유신]] === 다시금 힘을 얻게 된 조슈 번의 유신지사들은 기세를 몰아붙여 에도까지 밀고 올라갈 계획을 세웠으나, 사카모토 료마의 직소[* 자신의 주군에게 올리는 일종의 상소. 그러나 직소는 '''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할복해야 하는''' 위험한 행위이기도 했다.]로 [[토사 번]]주 야마우치 토요시게가 막부에 대정봉환을 촉구, 결국 [[대정봉환]]이 이루어져 [[에도 막부]]가 사라지게 되자 삿초 동맹은 전쟁의 명분을 잃어버렸다. 하지만 천황이 여전히 강력한 구 막부 세력의 힘을 두려워하여 비밀리에 막부 토벌령을 사쓰마 번에 내림으로써[* 이 토벌령이 사실은 [[이와쿠라 토모미]] 등이 조작한 것이란 설이 있다.] 결국 [[보신전쟁]]이 발발했다. 전쟁의 진행 과정은 해당 문서 참조. 보신전쟁은 유신파의 승리로 끝났으며, 이때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유신지사들은 당연하게도 일본의 정국을 장악, [[메이지 유신]]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발돋움했다. 그러나 조슈 번 자체는 [[폐번치현]]으로 [[야마구치현]]으로 전환,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.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많은 [[정치가]]들을 배출하였고, 이들은 정치 파당의 일종인 ''''조슈바츠(長州閥)''''를 형성했다. 조슈바츠는 사쓰마바츠와 함께 삿초바쓰(薩長閥)라는 정치적 대립구도를 형성했는데, 이후 한바츠 정치(번벌정치/藩閥政治)[* 지연으로 묶인 파벌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.]라고 불렸다. [[서남전쟁]]에서 조슈 파벌의 신정부군이 [[사이고 다카모리]]를 따르는 사쓰마 파벌을 궤멸시키며 일본의 주도권은 조슈파에게 넘어간다. [[구로다 기요타카]], [[사이고 주도]], 오야마 이와오, [[마쓰카타 마사요시]] 등 서남전쟁에서 조정에 남았거나 아예 진압군으로 참가한 사쓰마 번사들도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소수였다. 사쓰마 출신이었지만 사이고와의 정쟁으로 고향에서 미움받은 [[오쿠보 도시미치]]가 암살된 후 조슈 출신의 [[이토 히로부미]]가 그의 후계자가 되었고, 이토와 [[야마가타 아리토모]], [[이노우에 가오루]] 등 이른바 조슈3존을 중심으로 한 조슈 번사들이 사쓰마를 제치고 각종 요직을 차지했다. 특히 야마가타를 중심으로 조슈벌이 육군을 장악했고 사쓰마번은 상대적으로 해군에 많이 분포하여 이후 [[일본군의 육해군 대립]]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